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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열넷

기간

2005-06-24~2005-06-24

시간

19:30

장소

연지홀

가격

학생 5천원/ 일반 1만원

주최

문의

063-273-4823

공연소개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열넷

_프로그램
퓨전그룹 ‘오감도’_______ 여는 무대, 퓨전국악
최승희, 모보경__________판소리 
최승희 : 춘향가 중 춘향이 형문 받고 나오는 대목
모보경 : 춘향가 중 이별가
나금추, 조상훈 _________ 전라우도 상쇠춤
부포놀음 반주 타악연주 동남풍 / 박종석 (장고) 진재춘 (북) 이명훈 (징) 박태영 (꽹과리)
              전북도립국악원 /  서인철 (태평소)
강정열, 주정수 _________ 가야금 병창
강정열 : 단가 편시춘 / 심청가 중 ‘허허 내가 죽겄구나’ 옷을 잃고 탄식하는 대목 ~ 자진 방아타령
주정수 : 단가 백발가 / 춘향가 중 ‘갈까보다’ ~포졸 맞아들이는 대목 
퓨전그룹 ‘오감도’_________닫는 무대, 퓨전국악 


_출연진 소개
오감도의 음악은 활기가 돈다.
장거리에 쏟아지는 소리처럼 싱그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손뼉도 치고 발도 구른다.
손님을 부르기도 하고 흥정도 한다.
맛도 보고 만지기도 한다.
진한 사람 냄새가 나는 음악
이것이 오감도의 음악이다.

오감도는 2003년 결성된 코리안월드뮤직 그룹이다.
‘맛있는 관계’ 라는 퓨젼재즈그룹의 멤버와 크로스오버에 관심 있는 실력 있는 젊은 국악인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음악세계를 만들어가는 실험성이 강한 그룹이라 할 수 있다.코리안월드뮤직이란 오감도가 새롭게 만들어낸 장르로, 한국의 국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오감도의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를 바라는 포부에서 비롯되었다.
오감도의 음악은 한국의 전통적인 국악기(태평소,가야금,소금,대금,장고,북,꽹가리,해금 등)와 밴드악기(일렉기타, 베이스기타, 드럼, 건반)의 연주로 이루어진다. 언뜻 생각하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구성지만 힘이 있고 박진감이 넘치며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연주하는 곡들도 리더인 기타리스트 안태상의 작품들로 되어있다. 작곡자 자신이 뛰어난 기타리스트이면서 전공은 국악을 한 보기 드문 경우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국악기와 밴드악기의 특성을 잘 알고 있고 조화가 잘되는 음악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오감도의 연주는 공연 때 마다 달라진다. 그것은 일반적인 곡처럼 정확한 악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작곡자가 주제를 제시하면 연주자가 자기의 느낌에 따라 즉흥적인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출연>
    안태상-기타,작곡
    조송대-피리,태평소
    한현욱-베이스
    박종석-국악타악,퍼커션
    조용오-소금,대금
    서민수-키보드
    백은선-가야금
    권형준-드럼
    장인욱-건반

"용트림 하는 소리" 최승희(도 무형문화재 2호)
 최승희는 1937년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용리에서 태어났으면, 본명은 채선이다. 원체 밖에 나다니기를 싫어해서 별명이 우렁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노래를 좋아하고 또 잘해서 군산 사는 고모가 노래 한 번 시켜보게 데려오라고 하는 바람에 군산 나들이를 가게 된 것이, 소리꾼의 길을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최승희는 열아홉 살 되던 해 서울로 올라가 김여란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김영란은 일제강점기 ‘춘향가’로는 “판을 막아 버렸다.”고 할 만큼 잘했던 정정렬의 수제자이다. 그후 최승희는 박초월에게 수궁가를, 한농선에게 박록주 바디 흥보가를 배웠다.
1979년 국악협회 주최 전국명창대회 문공부장관상, 1980년 남원 춘향제 판소리 대상, 1981년 전주대사습 장원이 되었고, 1984년 전라북도지정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정정렬 바디 ‘춘향가’의 장래는 이제 최승희와 그의 제자들의 어깨에 달렸다.

"미성과 발림이 돋보이는 소리" 모보경
최승희의 자식이면서 제자이다. 정정렬, 김여란, 최승희로 이어지는 소리를 이어받아 편식이 심한 소리판 속에서 외롭게 정정열제를 지켜가는 젊은 소리꾼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소리를 자연스럽게 얹고 살아온 그는 가야금을 공부했지만 어머니의 강압적인 권유로 늦게서야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시작했다. 정권진명창으로부터 심청가를 잠깐 배우기도 한 그는 미성에 발림이 돋보인다. 소리의 공력을 쌓는 일이 이제부터 해야 할 과제라고 말하는 그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전북도립국악원 판소리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제26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대통령상 수상

고수 조 용 안
95전국고수대회 대명고부 대통령상
현)전라북도립국악관현악단 재직
새타악울림회 “천지소리” 대표
우석대, 목원대, 전통예술고등학교 출강

“기막힌 가락과 감칠맛 나는 신명”  나 금 추(도 무형문화재 7호)
나금추는 1941년 전남 강진읍 동성리에서 출생하여 7세때 광주로 이사해 그 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열일곱살 때 ‘임춘앵 창극단’의 공연을 보고 국악의 멋에 반해 버린 그는 그 길로 집을 나와 남원 국악단에 들어가 판소리와 농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전남에서 온 선생이라고 기억하는 스승 김재옥에게 쇠를 배워 본격적인 전문 국악인으로 활동하게 됐다.
1986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농악부 대통령상을 받았고, 지방문화재 제 7호인 선생은 50년 가까운 경력으로 다져낸 기막힌 가락과 감칠맛 나는 신명은 풍물판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내는 힘이 있다. 여성의 섬세함과 정확한 빠르기로 돌리는 부포놀음에는 한치의 헛장단이 없다. 장단 사이마다 펼쳐지는 춤사위의 아름다움과 힘의 조화가 어우러진 선생의 상쇠춤에는 다져진 기량 위에 또 다져진 기묘함의 예기가 있다. 현재 옛 장단을 그대로 지키려는 고집스러움을 갖고 도립국악원에서 농악을 가르치고 있다.

“선율이 있는 타악 연주” 조 상 훈
중학교 2학년 때 타악에 입문해 22년째 풍물가락을 익히고 있는 그는 타악 연주단 동남풍의 단장이기도 하다. 나금추 명인에게 호남우도농악을 사사하고, 김덕수, 이광수 명인에게 사물놀이를 사사했다.
전북 군산 출신인 그는 어려서부터 선친의 고향인 남원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전통음악을 접해오다가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본격적인 ‘잽이’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로 다져온 기본기는 다른 명인들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특히 그는 성운선, 조소녀 명인에게 판소리를 사사해 “그의 연주에는 선율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87년 : 경주 신라문화예술제 교육부장관상 수상
1988년 : 전국농악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1989년 : 경주신라문화예술제 타악부문 최우수상
2001년 : 법성포단오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명인부 대상

“제대로 된 소리하나 찾아 떠난 40여 년의 세월” 강 정 열(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23호)
1950년 전북남원의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7세때 아버님과 고모님에게 어깨너머로 가야금을 배우고, 당숙 강도근 명창에게는 판소리를 배우며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안숙선 명창과는 외사촌 지간이기도한 그는 열다섯살 무렵 소리보다 가야금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는 것을 알고 가야금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후 성금련, 김병호 등의 명인들을 사사했으며 서공철 명인에게는 산조와 병창, 철금산조 등을 배웠다. 그가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잡고있는 음악은 고모 강순영으로부터 배운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와 한숙구, 정남옥으로부터 서공철, 정달영 명인이 뒤를 이은 병창의 세계다.
정재국(달영)선생에게 10여년간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사사해 지난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23호 이수자 ”주 정 수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이수자이다. 백제예술대학 전통공연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주에서 주정수 가야금연구소를 운영하며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한 일 친선교류 일본 시코쿠현 순회공연, 뉴질랜드 한인의날 행사 초청공연, 일본 쎈다이 문화행사 초청공연.
전국국악재제전 기악부 우수상수상. 세계문화예술대상 가야금 병창부분 수상. (고수 조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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