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05-10-13~2005-10-13
시간
19:30
장소
명인홀
가격
초대
주최
문의
063-254-2391
목요국악예술무대
<故 은희진명창 5주기 추모공연>
들녘에는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어 노란 물결을 이루고, 산에는 단풍이 붉게 물든 중추지절에 故 은희진 명창을 추모하는 상설공연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일찍이 우리고장 전북은 넉넉한 인심을 바탕으로 맛과 멋과 가락의 고장으로 많은 명인명창을 배출했습니다. 근래에는 은희진 명창이 전북도립국악원 예술단 예술 감독과 창극단장으로 고향인 전주에서 국악발전을 위해 애쓰시다 애석하게 지병으로 타계하셨습니다.예술의 길은 고독하고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고 고행의 길이기 때문에 판소리 명창의 반열에 오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故 은희진 명창은 타고난 재질을 바탕으로 피나는 노력과 연마로 득음을 하셨고, 국립창극단의 창극 춘향전에서 이도령역과 심청전에서 심봉사역은 감히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도로 재능과 솜씨가 뛰어난 배우였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또한 故 은희진 예술 감독은 세상의 명예나 부귀에 연연해하지 않고 외길인 예술 갈마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신 분이십니다. 고인이저희 국악원에 뿌려놓은 예술 혼은 이 지역 국악계의 자양분이 되며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우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고인의 숭고한 예술 혼과 가르침이 더욱 빛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문하생 여러분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추모공연에 노고를 아끼지 않고 협조하여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전라북도립국악원장 오 규 삼 초대의 글
故 은희진선생 추모 5주년에 부쳐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님은 가셨습니다.어언 5년이 흘렀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아직도 님이 남긴 체취를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님이 떠난 빈자리는 너무 큽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자리가 가득 채워질 것같습니다.전라북도립국악원의 식구들이 님을 그리는 무대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한 무대입니다. 국악원 식구들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님은 참 행복한 분이십니다. 이젠 님을 대신하여 내가 그 보답을 할 차례입니다. 님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2005. 10. 13
도 무형문화재 제2호 흥보가 지정 이 순 단(미망인)프로그램합창
비가비명창 권삼득 中 “광대 한 평생”
제자의 편지살풀이춤민요 “흥타령”
판소리 연창단가 “사철가”
씻김굿제자의 편지
1989년 겨울. 작은 공간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판소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방송때문에 선생님을 찾아온 작은 꼬마에게 판소리를 가르쳐 주러 신 선생님께서는, 고집스럽게 입을 벌리지 않던 제게 인내와 따스함으로 판소리를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습니다."아가, 한번 혀봐. 이렇게."생전처음 들어보는장단과 소리.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한마디 한마디는 어느새 점차 재미는 노래로 제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아가, 판소리 한번 배워볼텨? 내가 아직제자가 없는디, 한번 배워볼텨?"저는 그렇게,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선생님의제자가 되었습니다.사당동. 버스도 다니지 않던 높은 언덕위에 있는 선생님의작은 집을 드나들며 심청가를 배우고, 춘향가를 배웠습니다.흉내도 제대로 못내는 어린 제자에게 "영락없는 퇴끼여" 하시며 사랑으로 인내로 한마디씩 정스레 판소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배가 고플때는 통닭을 한마리 시켜주시고, 있게 먹는다며 즐거워 하시던 선생님.중학교에 진학할때도, 고등학교에 진학때도, 대학교에 진학할 때도 부모님보다 더 기뻐하시던 선생님."아가, 젊을때 창을 혀봐. 그래야 공부도 많이 하게 되제. "선생님께서는 무엇이 그리 급하셨지 심청가 완창을 준비하게 하시고 일년이 지난 후 8시간 춘향가 완창을 준비 시키셨습니다. 8시간 완창. 그 힘든 싸움을 할때도 언제나 선생님께서는 저보다 더 초조해 하시고 저보다 더 걱정하시며 준비를 시키셨습니다.공연 당일, 네간 완창이 지난 후 기진맥진한 채 분장실로 향하는 저를 무대 뒤에서 부르셨습다."아가, 잘혔어. 이제 4시간 남았응께 하던대로 끝까지 혀. 선생님이 옆에 응께 겁먹지 말고."선생님의 따뜻한 격려, 그것은 제 판소리가 힘있게 나올 수 게 해준 지지대이자 존재의 이유였습니다.8시간 완창이 끝나고, 누구보다도 기하시던 선생님. "아가, 소리꾼은 가장 중요한것이 사람이여. 언제나 겸손해야고,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혀."언제나 제게 인간됨을 말씀하시던 선생님.느날 갑자기 선생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온 전주병원에는 선생께서 누워 계셨습니다."아가, 금방 나아서 문화재 발표회 해야항께 걱정말고 다려잉."그렇게 오히려 위로해 주시던 선생님.이제는 선생님께서 하늘로 먼저 가계십니다.선생님이 떠나시고 단 한마디의 소리도 내뱉지 못하던 제가, 다시금선생님을 기억하며 판소리를 시작했습니다.무대위에서 소리를 할때면 늘 선님께서 하시던 너름새와 표정, 이쁜 방울목이 떠오릅니다.죽기전까지 노력해도 선생님과 같이 무대를 멋지게 장식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기억며 끝까지 열심히 하리라 다짐합니다.하늘에서 내려 보시며 웃음지으실 수 있게,열심히 소리 하겠습니다.언제나 지켜봐 주세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故 은희진 명창 약력
1947 전라북도 정읍출생
1955 오천수 선생께 입문하여 판소리 사사
1962 광주 물산공진회 명창부대회 소년부 1등 수상
1963 인간문화재 박봉술 선생께 적벽가 사사
1977 국립창극단 입단
1977 인간문화재 오정숙 선생께 판소리 사사
1979 남원 춘향제 전국명창대회 대상수상(6회)
1980 미국교포 위문공연 흥부전 주연 공연
1983 (사) 한국판소리 보존회 이사 역임
1985 춘향가 완창 발표회
1986 심청가 완창 발표회
1988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대상(대통령상)
1988 수궁가 완창 발표회
1990 무형문화재 판소리 5호 춘향가 전수
1996 국립 창극단 지도위원 위촉
1996 한국 방송공사 국악대상 심사위원
1996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제 5호 전수교육보조사 지정
1997 고창동리국악당 심청가 완창 발표회
1997 전라북도립국악원 예술단 예술감독겸 창극단장 역임
1998 중앙국립극장 완창 춘향전 공연
1998 창극 장화홍련전 연출
1998 사쓰마도자기 400주년 기념 한·일 교류 참가
1998 한·일 문화교류 참가(가고시마현)
1999 전국순회공연 창극 춘향전 예술감독
2000 별세
우정출연오 정 숙
1972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 1등상 수상
1975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제1회 판소리부 장원
1981 홍콩 민속예술제 참가
1982 중요문화재 제5호 판소리 동초제 <춘향가> 준 보유자 지정
1983 제1회 남도 문화재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
1984 KBS국악대상 수상
1985 백림세계 민속음악제 참가(베를린)
1988 (사) 한국국악협회 이사
1989 세계 민속음악 페스티발 참가 구라파 순회공연
1990 평양 개최 범민족 통일음악회 참가
1991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보유자 지정
1992 ‘92 한국 예술 문화 부문 공로상 수상
1993 국립창극단 지도위원, 동초제 판소리 보존회 설립 이사장 취임
1999 한국종합예술대학 교수
1999 제9회 동리국악대상 수상
2000 대통령 훈장 수상 윤 석 안창극 “심청전”, “박씨전”, “이생규장전”대전엑스포 “구운몽”, “흥보전”, 명창 “임방울전” “수궁전”, “황진이”, “춘향전”, “배비장전”“광대가” “백범 김구“등 출연
2004 문화부 장관상 수상
현 국립 창극단 단원 김 학 용
1987 일본 해외공연 심청전
2000 영화 춘향전 방자역
2005 광복 60년 대하드라마 출연
현 국립 창극단 단원 이 자 람
1979 서울출생
1988 故 은희진 선생께 동초제, 춘향가, 강산제, 심청가 사사
1997 강산제, 심청가 완창(4시간)
1997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문 장원(판소리)
1999 동초제 춘향가 완창(8시간)
2000 세계 기네스레코드 최연소 최장시간 판소리 완창 기록 등재
2001 서울대 음악대학교 졸업, 동대학원 입학
2004 전주대사습놀이 일반부문 장원(판소리)
2005 국립 창극단 정기공연 “춘향” 춘향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