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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에 가고 싶다

기간

2007-11-15~2007-11-16

시간

19:30 (100분)

장소

모악당

가격

초대

주최

전라북도립국악원

문의

(063) 252-1395 / (063) 254-2391

공연소개

제 27회 전라북도립국악원 예술단 정기공연 및 제35회 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정기연주회

                                        섬진강과 함께 하는 음악여행
                                   그 강에 가고 싶다


원작시      ┃김용택
대본ㆍ연출┃김정수
작   곡      ┃류장영 김성국 안태상

◈ 제작 방향

흔히 무대에 구현되는 음악은 오페라와 같은 극적 스토리를 갖는 것과 음악회로 통칭되는 연주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섬진강과 함께 하는 음악여행”은 이들과 차별되는 독특한 무대표현 방식을 추구합니다. 기본적으로 “섬진강”은 시이기 때문에 그 특성을 십분 드러내기 위해 무용과 영상, 무대 연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시에서 표현되는 자연 배경과 인물, 시적 상징성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 재현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그 이미지를 최대한 반영하여 듣는 시, 보는 음악 구현을 목표로 할 것입니다.

“섬진강과 함께 하는 음악여행”은 총 스무 편의 시를 중심으로 영상, 춤, 마임 등이 가미된 한국적인 음악시극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스무 편의 시는 화자인 시인에 의해 해설되거나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섬진강 가에 사는 시인의 삶과 더불어,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를 풀어놓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적으로는 남성 독창, 여성 독창, 이중창, 삼중창, 합창, 그리고 합창과 독창의 안배를 통해, 그 완급을 조적해 나갈 계획입니다.

◈ 작품설명

대본ㆍ연출/김정수(전주대학교 영상예술학부 교수)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의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전라북도 일원을 적시고 전라남도, 경상남도를 통해 남해로 향하는 작은 강입니다. 실제로 강다운 면모를 갖춘 하류는 전라북도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섬진강 하면 전라북도의 강으로 연상케 한 배경에는 섬진강변에서 태어난 한 시인의 힘이 지대했습니다. 80년대 우리는 새로운 섬진강을 만났고, 이 때 부터 섬진강은  우리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가 쓴 한 편, 한 편의 시에는 나와, 나의 부모와, 나의 형제와 나의 이웃들의 삶이 있습니다. 역경 속에서도 굳건히 이겨 내온 섬진강의 길고 긴 자취가 있습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지순의 표정이 있습니다.

시와 음악은 본시 하나였습니다. 같은 그릇 안에 담긴 예술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깊고 진솔한 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이 예술들의 자취와 향기가 점차 희미해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전라북도립국악원 예술단의 2007년 특별기획공연으로 김용택 님의 시 “섬진강”을 무대음악화 하려는 데에는 그 점에 관한 이쉬움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우리들이 잃어가고 있는 시와 음악을 회복하고, 그 아름다움으로써 우리의 정서를 고양시키는데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동안 독립적으로 발전해온 시와 음악이 새로운 무대 공연형식을 통해 조우하여, 한국의 전통음악의 외연을 넓히는데도 좋은 계기가 되는 길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섬진강”은 김용택 님의 첫 발표 시이면서, 첫 시집 이름입니다. 수 십 편의 연작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꼭 섬진강이라는 이름의 시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김용택 님의 대부분의 시는 그의 삶과 더불어 섬진강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때문에 “섬진강”이 아닌 그의 모든 시들이 섬진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져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번 공연작품에 등장하는 시편들은 시인 자신이 선정한 시를 우선하였습니다. 시집 “섬진강”을 중심에 두고,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등, 김용택 님의 시집에서 두루 발췌한 주옥같은 시편입니다. 물론 몇 편의 시로서 시인의 삶과 그의  시세계가 가지고 있는 긴 호흡의 전모를 느껴보는 일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시와 음악을 보다 친밀하게 만날 수 있고, 우리 전북의 자랑스러운 예술적 성과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흡족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흔히 무대에 구현되는 음악은 오페라와 같은 극적 스토리를 갖는 것과 음악회로 통칭되는 연주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섬진강과 함께 하는 음악여행”은 이들과 차별되는 독특한 무대표현 방식을 추구합니다. 기본적으로 “섬진강”은 시이기 때문에 그 특성을 십분 드러내기 위해 무용과 영상, 무대 연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시에서 표현되는 자연 배경과 인물, 시적 상징성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 재현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그 이미지를 최대한 반영하여 듣는 시, 보는 음악 구현을 목표로 할 것입니다.

“섬진강과 함께 하는 음악여행”은 총 스무 편의 시를 중심으로 영상, 춤, 마임 등이 가미된 한국적인 음악시극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스무 편의 시는 화자인 시인에 의해 해설되거나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섬진강 가에 사는 시인의 삶과 더불어,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를 풀어놓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적으로는 남성 독창, 여성 독창, 이중창, 삼중창, 합창, 그리고 합창과 독창의 안배를 통해, 그 완급을 조적해 나갈 계획입니다.

<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푸른나무>
나도 너 같은 봄을 갖고 싶다
어둔 땅으로 뿌리를 뻗어내리며
어둔 하늘로는 하늘 깊이 별을 부른다 너는
나도 너의 새 이파리 같은 시를 쓰고 싶다
큰 몸과 수 많은 가지와 이파리들이
세상의 어느 곳으로도 다 뻗어가
너를 이루며 완성되는 찬란하고 눈부신 봄
나도 너같이 푸르른 시인이 되어
가난한 우리나라 봄길을 나서고 싶다

<섬진강 7>
울래 울래 나도 울래
날 저물고 저녁 오면
이 산 저 산 소쩍새야
여기저기 발동기야
가문 논에 물 품으며
천수답에 물 품으며
물 품은 논개구리야

이 논 저 논 새벽까지
나도 울고 너도 울고
울음 모아 함께 울래
쌀금 똥금 부엉부엉
날 가문다 부엉부엉
양식 없다 부엉부엉
사람 없다 부엉부엉
농부새야 부엉부엉
풀잎 뒤에 풀벌레야
나뭇잎에 개구리야
발동기는 물을 품고
지게 밑에 쓰러져서
이슬 속에 선잠 자고
섬진강물 깊은 데로
몸 담그고 나도 울래
너도 울고 나도 울고
울음 모아 함께 울래
닭이 울고 새벽 오고
섬진강물 품어대며
소쩍소쩍 소쩍새야
목이 타타 소쩍새야
앞산 옆산 옆산 뒷산
뺑뺑 돌아 소쩍새야
개골개골 개구리야
이 논 저 논 메마른 논
물꼬 둑에 개구리야
통통통통 발동기야
안 돌아가면 애통기야
잘 돌아가면 발동기야
저기 저 물 품어올려
모도 심고 설움 심어
어헤라야 어헤라야
어화 둥둥 섬진강아
어라 둥둥 가문 강아
오고 흘러 섬진강아
천리 만리 섬진강아

<섬진강 11>
다시 설레는 봄날에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곱게 지켜
곱게 바치는 땅의 순결,
그 설레이는 가슴
보드라운 떨림으로
쓰러지며 껴안을,
내 몸 처음 열어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
혁명의 아침같이,
산굽이 돌아오며

아침 여는 저기 저 물굽이같이
부드러운 힘으로 굽이치며
잠든 세상 깨우는
먼동 트는 새벽빛
그 서늘한 물빛 고운 물살로
유유히.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섬진강 15>
겨울, 사랑의 편지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풀들의
몸 다 누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섬진강 18>
나루
섬진강 나루에 바람이 부누나
꽃이 피누나
나를 스쳐간 바람은
저 건너 풀꽃들을
천번 만번 흔들고
이 건너 물결은 땅을 조금씩 허물어
풀뿌리를 하얗게 씻는구나

고향 산천 떠나보내던 손짓들
배 가던 저 푸른 물 깊이 아물거리고
정든 땅 바라보며
눈물 뿌려 마주 흔들던 설운 손짓들 두고
꽃길을 가던 사람들
지금 거기 바람이 부누나
꽃이 피누나
하루에도 몇번씩 오가던 뱃길
뱃전에 부서지며 갈라지던 물살을 보며
강 건너 시집간 누님도 객지로 가고
공장 간 누이들은 소식도 없다가
남편 없는 아이엄마 되어
밤배로 몰래 찾아드는
타향 같은 고향 나루
그래도 천지간에 고향이라고
이따금 꽃상여로 오는 사람들
빈 배가 떠 있구나
기쁜 일 슬픈 일 제일 먼저
숨가쁜 물결로 출러이던
섬진강 나루에
지금도 물결은 출렁이며
설운 가슴 쓸어
그리움은 깊어지는데
누가 돌아와서 이 배를 저을까
오늘도 저기 저 물은 흘러, 흘러서 가는데
기다림에 지친 물결이 자누나
풀꽃이 지누나.

<시는 서울서 쓰고 사는 건 우리가 살고>
일반벼는 공판하고
힘 좋은 놈 서울 가고
통일벼는 우리 먹고
머리 존 놈 이민 가고

재래종은 가두고
젊은 놈은 쥐어박고
개량종은 풀어두고
늙은이는 촌에 남고

잘사는 데 너그 살고
잘사는 건 너그 덕
못사는 덴 우리 살고
못사는 건 우리 탓
이자는 너그 갖고
본자는 우리 갖고

눈뜬 놈은 쌔려주고
잠자는 놈 떡 주고
우는 놈은 패주고
노는 놈은 한술 더 주고

돈은 너그가 쓰고
빚은 우리가 갚고

<물레야 물레야>
돌고 도는 물레 고비마다
사람 살 고비고비는 다 있다는데
이 고비나 저 고비나
행여 이 고비나
돌리고 돌리고 다시 돌려도
우리네 고비고비는
부모 형제 자식 잃어
한맺힌 실타래로
목 감기며 도는구나.
실타래 풀고 감고
한 시름에 두 시름
세 시름에 네 시름
시름시름 돌려봐도
우리네 기다리는 고비고비는
골골 숨넘어가는 피맺히는 소리로
몸서리치며 떨리다가
가락 끝에 반짝이는 피눈물로
피 흘리며 도는구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시 돌아올 저 고비는
우리네 시름 설움 다 자아올려
고른 실타래로
한 꾸러미 두 꾸러미
옴쏙옴쏙 떨어지거라.

<꽃등 들고 임 오시면>
긴 어둠을 뚫고
새벽닭 울음소리 들리면
김나는 새벽 강물로
꽃등 들고 가는
흰옷 입은 행렬을 보았네.
때로 흐를 길이 막히고
어쩔 때 부서져도
흘러온 길이 아득하고
흐를 길이 멀고 멀다면
흐르는 일이야 우리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범람하여 헛된 땅 메우고
우리 땅 되살리며
꽃등 들어 임의 얼굴 비춰보며.

<고추값>
어머니.
올해도 어머니 맘과 하늘의 마음은
서로 잘 맞아 곡식들이 이렇게 저렇게
소담스럽습니다.
사람들은 콩 심으랄 때 고추 심고
고추 심으랄 때 콩 심었으나
어머님은 이제나 저제나 고추를 심으셨습니다.
저렇게 보기도 좋은 곡식을 자식들같이 가꾸어
이렇게 먹기도 좋게 다듬어서
누구 좋은 일만 시키고
어머니, 어머님은
쭉정이나 벌레 먹은 것들을 잡수시며 사셨습니다.
잘되면 잘되어 걱정
안되면 안되어 걱정으로
고추가 저렇게 불송이같이 이글거리는데
어머님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올해도 고춧금은 똥금입니다.

<푸른나무 1>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 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에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 아래.

<푸른 나무 2>
소쩍새 우는 사연
너를 부르러
캄캄한 저 산들을 넘어
다 버리고 내가 왔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그리운 너의 이름을 부르러
어둔 들판 바람을 건너
이렇게 내가 왔다
이제는 목놓아 불러도
없는 사람아
하얀 찔레꽃 꽃잎만
봄바람에 날리며
그리운 네 모습으로 어른거리는

미칠 것같이 푸르러지는
이 푸른 나뭇잎 속에
밤새워 피를 토하며
내가 운다.

<산 벚 꽃>
저 산 너머에 그대 있다면
저 산을 넘어 가보기라도 해볼 턴디
저 산 산그늘 속에
느닷없는 산벚꽃은
웬 꽃이다요

저 물 끝에 그대 있다면
저 물을 따라가보겄는디
저 물은 꽃 보다가 소리 놓치고
저 물소리 저 산허리를 쳐
꽃잎만 하얗게 날리어
흐르는 저기 저 물에 싣네.

<강가에서>
강가에서
세월이 많이 흘러
세상에 이르고 싶은 강물은
더욱 깊어지고
산그림자 또한 물 깊이 그윽하니
사소한 것들이 아름다워지리라.
어느날엔가
그 어느날엔가는
떠난 것들과 죽은 것들이
이 강가에 돌아와
물을 따르며
편안히 쉬리라.

<가을 밤>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가을 밤에
달빛을 밟으며
마을 밖으로 걸어나가보았느냐
세상은 잠이 들고
지푸라기들만
찬 서리에 반짝이는
적막한 들판에
아득히 서보았느냐
달빛 아래 산들은
빚진 아버지처럼
까맣게 앉아 있고

저 멀리 강물이 반짝인다
까만 산속
집들은 보이지 않고
담뱃불처럼
불빛만 깜박이다
하나 둘 꺼져가면
이 세상엔 달빛뿐인
가을 밤에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들판이
들판 가득 흐느껴
달빛으로 제 가슴을 적시는
우리나라 서러운 가을 들판을
너는 보았느냐.

<꽃산 찾아가는 길>
오늘도 나는 당신 속에 저뭅니다. 당신을 찾아나선
이 화창한 긴긴 봄날 긴긴 해 다 질 때까지 당신을 찾
아갑니다. 당신을 찾아가는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물
막히면 물 건너고 산 막히면 산 넘듯, 당신 늘 꽃 펴
있다는 그리움 하나로 이겨갑니다. 가다가 가다가 해
저물면 산 하나 되어 산속에 깃들었다가 해 떠오면 힘
내어 갑니다. 당신 만나 환히 꽃 필 저기 저 남산은
꽃 없는 쓸쓸한 산 아니라 해맑은 해 어디나 돋는
나라, 눈 주면 늘 거기 꽃 피는 당신 찾아 오늘도 지친
이 몸 당신 찾아가다가 저녁 연기 오르는 마을 저문
산속에 산 되어 깃듭니다.

<꽃>
그대 잠 못 들고 뒤척일 때 꽃 지는 소리 들린다
다시 돌아눕는 그쪽이 두렵다 무서워 다시 찾는 쪽도
꽃 지는 소리 무섭다
어둡다 어둠 속에서도 눈 감으면 어디선가 아픈 숨소리 들린다
그러면 또 다시 내가 돌아누우며 네 손을 더듬어 찾는 줄 알라
우리들의 잠마저 이리 아프고
어디로 돌아눕든 각 진 돌멩이 맨살에 박힌다
친구여
어디로 돌아누울 곳 없어 이렇게 발끈 쭈그려앉은 
이 무서움 속에서
어디선가 우리를 부르는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자
어둠 속에 뜬 눈이 꽃처럼 아프다

첫봄이 먼데서 겨울을 이기며 온다.

<섬진강에 부는 바람>
이 산 저 산 넘어서
섬진강에 부는 봄바람은
강물을 찰랑 놀리는데
이내 마음에 부는 봄바람
흔들려야 물 오르는
버들 실가지 하나 못 흔드네
어쩔거나 어쩔거나
섬진강에 오는 요 봄
올똥말똥 저기 저 봄
바람만 살랑 산 넘어오네.
이 산 저 산 넘어간 내 님
이 산 저 산 못 넘어오고
소쩍새 소리만 넘어오며
이 골짝 저 골짝 소쩍거려
꽃 흔들어 산 밝혀놓고
꽃구경 오라 날 부르네.
어서 오소 어서 오소
나는 못 가겠네 어서 오소
보리밭 매다가 못 가겠네
앞산 뒷산에 부는 바람아
보릿잎 살짝 눕히는 것같이
이 몸 눕히며 어서 오소
태산같이 넘어져 오소
이 몸 위로 넘어져 오소.

<눈 오는 마을>
저녁 눈 오는 마을에 들어서 보았느냐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마을이 조용히 그 눈을 다 맞는
눈 오는 마을을 보았느냐
논과 밭과 세상에 난 길이란 길들이
마을에 들어서며 조용히 끝나고
내가 걸어온 길도
뒤돌아볼 것 없다 하얗게 눕는다
이제 아무것도 더는 소용없다 돌아설 수 없는 삶이
길 없이 내 앞에 가만히 놓인다
저녁 하늘 가득 오는 눈이여
가만히 눈발을 헤치고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 보이지 않은 것 하나 없다
다만
하늘에서 살다가 이 세상에 온 눈들이 두 눈을 감으며
조심조심 하얀 발을 이 세상 어두운 지붕 위에
내릴 뿐이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쌀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그 강에 가고 싶다>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을 볼 일이다
무엇이 바쁜가
이만큼 살아서 마주할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도 저 혼자 돌아간다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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