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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관현악으로 듣는 우리가락 우리산조

기간

2008-11-21~2008-11-21

시간

19:30 (120분)

장소

연지홀

가격

일반 10,000원 / 학생 5,000원

주최

사단법인 마당

문의

063-273-4823

공연소개

국악관현악으로 듣는 우리가락 우리산조 

장   소 :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주   최 : 사단법인 마당
후   원 : 전라북도
관람료 : 일반 10,000원 학생(초중고) 5,000원
문   의 : 063-273-4823~4
* 본 공연은 2008전라북도 무대공연작품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프로그램 : 
강백천류 대금산조 / 편곡 류장영 (전북도립국악원관현악단장)
   - 협연 양성필 (중요무형문화재 45호 대금산조 이수자)
 국악관현악곡 ‘거울나라’ /작곡 이경섭
 신관용류 가야금산조 / 편곡 윤명원 (단국대학교 교수)
  - 협연 강정열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
 국악가요 (정풀이/가야지)
  -소리 이용선
 단소산조를 위한 ‘추산’ / 편곡 김회경
  - 협연 이항윤 (전북도립국악원 대금수석)

지      휘   유 장 영 (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
관현악단  소리고을

◆ 프로그램

1. 강백천류 대금산조 편곡/류장영 협연 양성필
강백천(姜白川, 1898~1982)은 1898년7월 1일생으로, 1914년(17세) 익산사람 박준필(朴俊匹)에게 대금을 사사하여 정악과 풍류 한바탕을 이수하였다. 전주·남원등지의 율방에서 전용선(전추산)등과 합주를 즐겼고. 전용선에게서 단소, 가야금, 양금 시조 등의 기본을 익히고 이후 스스로 연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강백천은 1938년 ‘시나위더늠’ 대금산조를 창안하였는데 기존의 산조가 판소리에 그 기본을 두어 만들어진 반면 강백천의 산조는 시나위가락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산조이다.
강백천은 이른바 대금산조 시나위더늠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1940년에는 조선성악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이후에는 전주에서 전추산과 국악원을 창설, 1951년에는 전주국악원의 기악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4년에는 남원국악원을 창설하고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후 강백천은 거주지를 부산으로 옮겨 1965년 한국국악협회 부산지부의 지도고문과 1970년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전수원 강사를 역임하였다. 강백천은 대금 산조로써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43호로 지정되었고 그의 대금산조는 김동진(金東鎭), 김동표(金東表)형제에의해 전승되다가 김동진이 타계한후 김동표가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 신관용류 가야금산조 편곡/윤명원 협연 강정열
신관용은 1912년 전라북도 김제군 성덕면 성덕리 고현마을에서 아버지 신갑종과 무속인출신 어머니 윤순길 사이에서 태어났다. 5남1녀중 4남으로 신관용의 호적명은 신관영이다.
아버지 신갑종은 피리와 장고에 뛰어난 명인이었다고 하며 신관용은 열다섯 살 때 판소리를 시작으로 하여 가야금, 해금, 장고등을 학습하였으나, 가야금이 가장 출중하였다고 한다. 그는 매우 뛰어난 창조성이 있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관용은 생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연주실력은 뛰어났으나 젊어서부터 아편을 해서 일찍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지만 혼자 이리저리 떠돌며 풍류를 즐겼기 때문이다.
신관용 가야금산조의 특징은 다른산조와 달리 ‘진양조’가 계면조로 시작되며 장단에는 잉어걸이가 자주 나오며 붙임새가 복잡하다, 또한 중모리가락에 계면조로 된 가락이 길며 맨끝의 ‘단모리’다음에 ‘엇모리’가 붙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이 슬픈 가락이 중심이 되고 있는데 신관용이 가야금연주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관용은 일제말과 6.25사면을 전후한 신산한 시기에 전북일원에서 그야말로 귀신같은 가야금솜씨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인 연주가였다. 그의 전승자로는 주선희와 강순영이 있으며 현재 신관용류 산조를 복원, 재해석하여 그 류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으로는 안옥선, 강정렬, 강동렬, 변금자, 황미연등이 있다.

3. 국악가요 “정풀이/ 가야지” 편곡/박범훈 소리/이용선
 국악가요는 일반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편안하고 쉬운 멜로디로 구성되어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겁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연출된다.
정풀이
달빛이 외로와 창문틈새로
부채만한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장승처럼 우뚜머니 흩어진 시간은 지켜섰어라
그 옛날 두 손길 잡고야 전설이 아른아른
그윽한 눈길에 신화 뭉개뭉개
번개하나 번뜩 이가슴에 꽃혀
그렇게 묵혀둔 정이었는데
이처럼 간직한 정이었는데
바람맞은 연기런가 외기러기 목메인 소리
아~ 밤이 깊어라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꽃피고 새울면 나는 가야지
산넘고 물을 건너서 혼자 가야지
꽃이피면 꽃에서 자고
바람불면 바람에 가고
머나먼길 울며불며 가야기
우리절 부처님은 마음씨도 좋와
오냐오냐 잘가라고
나무아미타불

가야지 가야지
꽃피고 새울면 나는 가야지
산넘고 물을 건너서 혼자 가야지
속절없는 세상살이
소리없이 지고마는 꽃잎처럼
훠이훠이 호로 가야지
우리절 부처님은 마음씨도 좋와
오냐오냐 잘가라고
나무아미타불

4. 국악관현악곡 ‘거울나라’ 작곡/이경섭
흥겨운 춤사위와 아름다운 선율이 넘쳐 흐르는 상상과 동화의 거울나라를 흥겹고 역동적인 리듬으로 표현하였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구성되어져 있다.

5. 단소산조를 위한 ‘추산’ 편곡/김회경 협연/이항윤
전추산(全秋山, 본명 전용선全用先, 1887~1967)의 호 ‘추산’은 정읍의 옛 지명을 따 본래는 초산(楚山)이었으나 해방이후 ‘추산’으로 불리웠다. 전추산은 어려서 전계문에게 사사한 후 독공을 하여 단조, 대금, 퉁소, 피리, 가야금, 해금, 양금등을 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계문은 전추산과 같은 집안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계문은 고종 앞에서 소리를 한 어전명창이었던 전도성의 수행고수로 알려져 있다.
전추산은 거문고와 가야금풍류를 익힌 후에 17세경부터 단소를 불기 시작하였다. 전추산은 1930년대 후반 정읍의 대부호 김기남의 산정인 아양정에 머물며 제자를 양성하였다.
전추산은 단소에 있어서는 신화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의 풍류와 단소산조가 1959년 6월 3일 녹음되었으며, 1963년 국립국악원 국악진흥원의 국악상을 수상하기도 아였다.
전추산의 음악은 편재준과 김무규가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편재준의 음악은 전혀 전해지지 않으며, 김무규(金戊圭,1900~1994)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83호 향제줄풍류 기예보유자로 지정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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