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09-06-10~2009-06-10
시간
19:30 (90분)
장소
연지홀
가격
초대
주최
전라북도립국악원
문의
(063) 710-1361~4
제14회 대학생 협연의 밤
공연예약 : www.kukakwon.or.kr
[프로필·Profile]
류장영 – 지휘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졸업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 박사과정
<한국의 농악-호남편>등 저서 다수
<순창지역 김매기 소리의 음악적 연구>등 논문 다수
전통 음악극 <그리운 논개>등 작곡 다수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실장 역임
현 전주세계소리축제 연구위원, 전주전통문화센터 운영위원
전주역사박물관 운영협의회장, 국악실내악단 <소리고을> 음악감독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겸임교수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장, 지휘자
거문고_이유리
원광대학교 고등부 현악(최우수상)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졸업
제8회 전국 국악경연대회 일반부 기악(대상)
전라북도립 국악관현악단 청소년 협연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 4학년
아쟁_조누리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졸업
안산 시립관현악단 협연
09`` 중앙대학교 정기연주회 협연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4학년
가야금_배유경
원광대학교 전국 국악경연대회 은상 수상
가야금 중주단 "사과나무" 단원
공연 기획사 "루체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주자(공연다수)
전북대학교 4학년
경기민요_김선경
제6회 고양행주 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학생부 금상
제12회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등부 민요부문 입상
제7회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고등부 민요부문 1등
우석대학교 국악학과 4학년
소금_이은진
우석대학교 콩쿨 대금부문 1등
전주예술고등학교 졸업
제26회 전국국악대제전 기악 일반부 우수상
전북대학교 4학년
가야금_조선인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졸업
중앙대 총장배 국악경연대회 가야금 동상
젊음예인을 위한 협주곡의 밤 25현 가야금 협주곡
"아리랑" 협연(국립국악관현악단)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4학년
[프로그램·Program]
거문고 협주곡 "달무리" 작곡_정대석
협연_이유리/전북대 한국음악학과 4년
이 곡은 거문고의 중후한 음색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으며 특히 개방현을 다양하게 승화시켜 달에대한 신비로움을 세악장으로 구성하였다. 1악장은 그리움과연인, 2악장은 달을맞이하는 즐거움과 놀이, 3악장은 이곡의 절정으로 달무리의 환희와 신비로움을 표현하였다.
아쟁 협주곡 "아라성" 작곡_조원행
협연_조누리/중앙대 국악대학 4년
해금 협주곡 ``아라성``에 이어 ``소아쟁을 위한 협주곡 아라성 2번``으로 만들어진 이 곡은 소아쟁의 애잔한 음색과 다이나믹한 관현악의 대조적인 변화와 조화를 통하여 자연의 신비로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25현 가야금협주곡 "아랑의 꿈" 작곡_김계옥 편곡_박위철
협연_배유경/전북대 한국음악학과 4년
경상도 민요 밀양아리랑을 주제로 편곡한 25현 가야금독주곡이다. 악장은 전주, 세마치, 중모리, 안당장단등 4악장으로 이루어진 곡으로써 다양한 주법과 농현으로 가야금의 맛을 살렸으며 조의 변화를 주어 곡의 색채를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경기민요 협주곡 "경기놀량" 편곡_김희조
협연_김선경/우석대 국악학과 4년
놀량은 선소리산타령 중에서 제일 첫 번째로 부르는 소리이다. 선소리산타령 이라고 하면 놀량을 가리키고 놀량이라고 하면 선소리산타령과 동시에 선소리산타령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리가 곧 이 놀량이다.
소금 협주곡 "길" 작곡_이준호
협연_이은진/전북대 한국음악학과 4년
이곡은 우리 악기중 가장 높은 음역을 가진 소금을 위해 협주곡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소금은 고음역의 맑은 소리를 지니고 있으면 선율이 아름다워 우리음악에서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악기에 속한다. 이 작품에서는 소금이 가진 특성을 최대한 살려 고도의 테크니컬한 주법과 현대적인 기법이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우도 농악인 "칠채"와 "육채"장단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주법들이 관현악과 함께 어우러진다.
25현 가야금협주곡 "찬기파랑가" 작곡_정동희
협연_조선인/중앙대 국악대학 4년
찬기파랑가는 신라시대의 화랑이었던 기파랑의 높은 인격을 노래한 충담사가 지은 향가이다. 기파랑이 누구인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당시 화랑 지도자로 추정된다. 찬기파랑가가 지어진 때 당시는 삼국통일을 완수한 때부터 100여년이 지난 후로 화랑의 성격도 통일기에 활약하던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왕실의 정치적 입지는 내리막길에 있었으며, 정신적으로도 음풍영월에만 빠져 유약해져 있었다. 이러한 때에 기파랑을 찬양했던 것은 화랑의 전성기에 대한 향수에서 화랑의 정신과 모습을 다시 한 번 다짐하고자 했던 의도로 볼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화랑의 정신과 모습을 통해 시련이나 역경에 굴하지 않는 패기를 지니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곡에 담아서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