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09-08-11~2009-08-11
시간
19:30 (90분)
장소
연지홀
가격
전석 3,000원 (전석 매진)
주최
전주시 / 전주시립교향악단
문의
전화예매 063)274-8641
전주시립교향악단-여름방학 특선 청소년음악회
[프로필·Profile]
지휘 강석희 Conductor Seok-Hee, Kang
지휘자 강석희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였다. 재학 시 동아음악콩쿨, 중앙음악콩쿨에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창악회, 아시아 작곡가 연맹, 미래악회 등에서 여러 창작곡들을 지휘하였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지휘연구원에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91년 오스트리아 그라쯔 국립음악원 지휘과에서 수학하였고, 1993년 오스트리아 짤쯔부르크 국립음악원 모짜르테움에서 관현악지휘 및 합창지휘를 전공하여 두 과정 모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여 디플롬 및 Magister를 취득하였다. 유학 시 Budapest Symphony Orchestra와 Nuernberger Symphonker를 지휘하였고, 귀국 후 KBS 교향악단, 수원시립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천시립교향악단,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국내 유수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활발히 연주활동을 하는 지휘자로 주목받고 있다. 오페라와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음악을 소화해내는 그는 수원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를 역임하였고 현재 전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단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프로그램·Program]
J. S. Bach / Brandenburg Concerto, BWV 1048 No. 3
바하 / 브란덴부르그 협주곡 3번
Ⅰ. Allegro
F. J. Haydn / Symphony No. 101 in D Major
하이든 / 교향곡 101번 라장조 “시계”
Ⅱ. Andante
W. A. Mozart / Symphony No. 40 in g minor K.550
모차르트 / 교향곡 40번 사단조
Ⅰ. Molto Allegro
L. V. Beethoven / 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
베토벤 / 교향곡 5번 다단조 “운명”
Ⅰ. Allegro con brio
P.I. Tchaikovsky / Symphony No. 6 in b minor op. 74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6번 라단조 “비창”
Ⅳ. Finale Adagio Lamentos
J. Brahms / Symphony No. 1 in c minor op. 68
브람스 / 교향곡 1번 다단조
Ⅳ. Finale Adagio
[프로그램 노트·Program note]
바하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바로크 시대 대표적인 음악형식인 합주협주곡이다. 합주협주곡이란 고전파, 낭만파 시대의 협주곡의 전신으로 독주 악기가 하나 또는 두세개가 있고, 현악합주단이 한 그룹을 이룬다. 마치 이 둘이 경쟁하듯(협주곡이라는 의미의 단어 콘체르토는 경쟁의 뜻을 가진다) 주거니 받거니 연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크 시대에 또 하나의 특징은 통주저음이라는 것이다. 이 통주저음을 뺴고서는 바로크를 말할 수 없다. 통주저음이란 건반악기(바로크 시대에는 피아노가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라 쳄발로가 대표적 건반악기이며 간혹 오르간이 쓰이기도 했다) 가 지속적으로 독주 악기가 쉴때에도 계속 낮은 음(저음)으로 반주를 넣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반주는 지금 우리가 악보에서 보는 것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작곡자가 화음만 기록해 놓고 연주자는 그 때 그 때 즉흥적으로 이 화음에 맞는 반주를 만들어 넣어야했다. 그러니 연주자의 실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
하이든 / 교향곡 101번 “시계”
교향곡 제101번은 역시 제 2악장 때문에 별명이 유래되었는데 제 2악장의 선율을 뒷받침하는 반주가 마치 시계의 똑딱거리는 시계와 같다고 해서 “시계” 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제1악장은 신비스러운 서주 뒤에 화려하고 쾌활한 곡이 전개된다. 제 3악장은 화려한 미뉴에트이며 제 4악장은 유쾌한 피날레이다.
“시계”는 2악장의 메인 멜로디가 시계 소리 리듬과 흡사하여 부쳐진 이름, 하이든의 놀람과 더블어 대표적인 교향곡이다. 이 곡은 하이든이 두 번째 런던을 방문했을 때에 쓴 3개의 교향곡의 하나이며 잘로몬 세트 11번째의 교향곡이다. 일반적으로 이 곡을 “시계” 라고 부르게 된 것은 제 2악장에서 거듭 나타나는 주제를 밑받침 해 주는 리듬이 스타카토의 8분음표로 시계의 초침 소리 같은 음형을 나타내는 데에서 시작된 것이다.
모차르트 / 교향곡 40번
모차르트는 일생 동안에 40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그 가운데 단조로 쓰여진 곡은 불과 2곡 밖에 없다. 곧 25번과 이 40번이며 모두 같은 g단조로 되어 있다. 이 40번은 정열적이면서도 정서가 넘친 악상을 가지고 있고 비극적인 동시에 병적이라고 할만큼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교향곡 속에서 낭만적인 표현의 선구적 징조가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간의 고통 속에서 빚어진 위안의 마음이 보인다는 제1악장에서는 모차르트 만년의 내성적 깊이, 즉 부친 레오폴드의 죽음, 오페라 <돈 지오반니>에서 돈 지오반니의 죽음의 장면, 친구의 죽음 등을 통해 모차르트가 ‘죽음’을 의식하게 되었고, 현실을 현실로서 받아들이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생각 등이 아름다운 선율과 낭만적인 색체감, 풍부한 화성에 의해 남김없이 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에 이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의 모차르트의 어려운 생활환경이 이 곡의 비극성을 더욱 의식하게 해주고 있다.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창작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비극적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비극성과 곡상이 일치되어 이 교향곡은 19세기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의 하나로 인정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곡의 가치는 이러한 정서적 매력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음악적인 요소가 정교하고 완벽하게 결합되어 조화와 통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정감과 지성이 이렇듯 균형을 이루고 있는 교향곡도 드물 것이다.
베토벤 / 교향곡 5번 “운명”
이곡은 운명교향곡 이라는 별칭으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하지만 사실은 일본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곡을 만들 당시 베에토벤은 그의 제자인 쉰들러에게 처음에 나오는 ``따-따-따-따-``하는 유명한 모티브를 가리켜 "운명이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이야기한데서 유래되어 일본인들이 붙였다고 한다. 한편 전쟁 중에는 상대국의 음악연주가 금지되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연합군과 독,일,이탈리아군 사이에는 서로 상대국의 음악을 금지하였는데 유독 이 운명교향곡만은 예외로 금지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따-따-따-따-"하는 운명의 모티브가 모오스 기호에서는 V를 나타내며 이것은 승리(victory)를 의미하기 때문에 연합국측 에서도 널리 연주되었다고 한다. 이 교향곡은 종악장에 목표를 두고 전개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제1악장 모두에 나타나는 「짜자자짠―하는 <운명>의 모티브는 제1악장에서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3악장에서도, 또 제 4악장의 재현부 직전에도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는 등, 전악장을 하나로 단단히 묶어놓고 있기 때문에 특히 유명하다고 해서 제1악장만 듣고 좋아 한다면 언제까지나 이곡의 참 모습은 알도리가 없을 것이다. 「암흑에서광명으로」란 이 곡의 테마는 전악장을 다 들어야만 비로소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6번 “비창”
차이코프스키를 보고 사람들은 대개 "우수의 작곡가" 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어쩌면 이 말은 그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차이코프스키는 1840년 우랄지방의 한 작은 도시인 캄스코봇킨스크 에서 태어났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나, 이보다는 어학능력이 더 뛰어나 6살 때는 독어나 불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음악공부 보다는 법학공부를 해야 했던 당시의 주변 상황으로, 그는 20살이 되어서야 겨우 하고 싶은 음악을 시작 할 수 있었다. 곧 루빈시타인이 주관한 러시아 최초의 음악원에 입학을 하게 되고, 졸업 후에는 처음 설립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교관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때 미망인이며 부호였던 폰메크 부인을 알게 되었고, 음악을 잘 이해하는 그녀의 많은 재정적인 후원을 받으며 교관직을 그만두고 작곡생활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살았던 시대는 참으로 어두웠다. 당시 러시아 사회는 경제난으로 국민 전체가 매우 힘들고 암울하게 살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둡고 우울한 시대적인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작곡했던 수많은 곡들마다 우수에 찬 느낌을 더해 주는 것 같다. 1893년 11월, 그는 콜레라로 인해서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향년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죽음의 원인은 콜레라균에 오염된 냉수를 무심코 마신데 있었다. 이 비창은 죽음 9일전에 초연되었었는데, 그의 죽음을 예견한듯한 연주였다. 초연당시는 연주단원들이나 청중들 모두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죽은지 며칠 후 다시 연주 되었을 때는 홀에 모인 사람들 모두 한없이 울었다고 전해진다. 작곡도중 수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써내려갔다는 비창교향곡 비록 절망적이고 우울한 곡이지만 이곡은 차이코프스키 최고의 걸작인 것은 분명하다
브람스 / 교향곡 1번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교향곡 1번``이라는 말을 듣고 연상되는 작품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말러의 ``교향곡 1번``이 혹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이 떠오른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단연코 가장 많은 분의 입에서 나오는 답은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일 것이다. 그만큼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많은 사랑을 받는 곡으로 자주 공연되는 빈도수로 보나 시중에 발매된 음반의 종류로 보나 교향곡 중의 교향곡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곡이다. 브람스는 22살이었던 1855년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을 듣고 감격하고 교향곡을 쓰기로 작정했다 한다. 그 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서주가 빠진 지금의 1악장에 해당하는 부분이나 역시 교향곡으로 준비했다가 결국 협주곡으로 1859년에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 1번 준비에 쉽사리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틈틈이 하노버, 피팅겐 또는 뒤셀도르프 등지에서 써나가서 1862년까지는 거의 완성되어 그해 7월엔 친구인 디트리히와 슈만의 미망인이며 브람스의 친구였던 클라라 슈만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 후 다른 악장을 만들어 갔지만 본격적으로 매달리지는 못하다가 1873년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완성하고는 관현악곡에 상당히 자신을 가지게 됐고 이듬해 187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이 교향곡에 몰두하여 그 해 여름 쮜리히에서, 다음해엔 하이델부르크 근처에서, 1876년 여름엔 함부르크 근교 저스미츠에서 계속 써나가다, 같은 해 9월에 클라라의 저택이 있는 바덴바덴 근처의 리히텐타르 저택에서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그의 나이 43세 되는 때였다. 착상부터 완성까지 21년이 걸렸으며 이렇게 늦은 나이에 교향곡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브람스가 얼마나 교향곡의 작곡에 신중했는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베토벤이 남긴 9개의 교향곡의 거인과 같은 모습에 자신의 교향곡이 가려지길 원하지 않았으며 그만큼 그의 작품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브람스가 특히 주의를 기울인 것은 바로 관현악의 색채적인 효과로서 곡이 완성되기까지 몇 번이고 악기를 바꾸어 보거나, 더하거나 빼보면서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고심했다 한다. 1876년 11월 4일 칼르스르에 대공의 궁정 극장에서 오토 데소프의 지휘로 초연된 뒤 이듬해 출판되기까지의 사이에도 몇 번이고 손질을 했다.